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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 복희씨(太皞 伏羲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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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입력 : 2024-09-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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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의 인물로, 태호 복희씨(太皞 伏羲氏)로 보통 부른다. 


인간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


삼황오제 중에서도 시조격에 해당되는 항렬을 가지고 있어 불분명한 전승이 많다. 


여와의 오빠라는 설, 남편이라는 설, 둘 다라는 설, 둘이 관계 없다는 설 등이 있다.


둘 다라는 설이 나오는 이유는 이런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여와와 더불어 창조신에 해당되는 존재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기원전 2800년경에 살았다고 한다. 


원래 전설상으로 태호는 제수(濟水) 일대의 부족들과 파나라의 공동 시조신이었고, 복희는 초나라의 시조신이었다. 


즉 별개의 인물이었는데, 전국시대 진나라에서 편찬한 《세본》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부터 동일인으로 서술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이 2개이고, 본래 동일인이 아니라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실존성이 낮은 신화적 상징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100여 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지며, 무덤은 회아양 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여와와 복희가 결부되는 것은 고대 한나라 때부터라고 한다.


삼황오제 중 3황의 맨 앞에 위치하는 존재로 처음으로 팔괘를 그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팔괘를 복희팔괘라고도 한다.


그와 동시에, 인간에게 목축을 가르친 신이며, 팔괘를 창안하여 음양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이치를 짐작하게 한 신이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동쪽과 봄을 다스리는 신이며, 인간들에게 불을 선사했다고도 한다. 


그와 동시에, 여와와 더불어 천지를 창조해냈다고 한다.


거기에 당시 중국인들에게 그물 낚시, 사냥, 철제 무기 사용법, 요리, 동물 사육, 음악, 악기, 글쓰기, 양잠 및 직물로 실을 짜는 법을 가르쳤고, 제방, 운하 및 관개 도량을 파서 황하 물을 길들이고,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를 창시했고, 당시 도덕과 사회적 질서가 없는 인류의 법을 창시했다.


다른 전설에서는 용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 문화에서 용은 힘과 지혜, 행운의 상징이다.


음양에서 복희는 우주의 남성적, 능동적, 창조적 힘을 나타내는 양에 해당되며, 점술, 점성술, 중국 의학 등 중국 문화의 철학의 발전에 기초를 놓았다고 여겨지며, 변화하는 계절과 삶과 죽음의 주기 등 시간의 흐름을 관찰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도교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통일성과 균형을 나타내는 태극과 관련되어 있고 자연의 패턴과 별의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를 음과 양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태극도로 발전시켰고 점괘 혹은 점괘에서 사용되는 팔괘와도 연관되고 지혜와 균형, 자연계와의 조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복희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주관하는 동방의 신으로, 뇌신이 인간계를 홍수로 멸망시키려고 했을 때 복희의 아버지에게 붙잡혔는데, 뇌신을 풀어준 복희와 여와를 뇌신이 살려줌으로써 둘만 살아남았고, 여와가 사람을 만들고 난 뒤에 사람들에게 농사, 불을 피우는 법과 사용하는 법, 사회 생활 등의 기본기를 가르쳤으며 팔괘를 만들었다.


후에 중국 동북부에 진(陳)나라를 세워 다스렸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인류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인류를 번창시키기 위해서는 남매끼리 성교를 해야 하는데 유교적 가치관으로 주저하게 되자, 산의 두 봉우리에서 각각 피운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면 신의 뜻으로 알자 하여 행했더니 과연 연기가 하나로 합쳐져서 망설임없이 두 신이 결혼하여 인류를 낳았다고 한다.


다만 유교가 훨씬 이후에 생겼다는 것을 감안할 때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여와를 배필로 맞이할 당시 이야기로, 복희가 여와에게 구혼을 했는데 여와는 친남매라는 이유로 계속 혼례를 미루었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어느 날, 여와가 자신을 잡으면 혼례를 치러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복희가 여와를 잡으러 달리는데, 여와는 나무 둘레를 계속 돌았고 복희는 그 뒤를 쫓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뒤로 빙글 돌아 여와를 품에 안아 그 뒤로 그 둘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홍수로써 이루어진 세상의 재탄생과도 관련이 깊어, 곤의 의지를 받들어 치수 작업을 이어나가는 우(禹)와도 만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가 치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뱀과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는 신이 바로 복희씨였다고 한다.


그를 보좌하는 신은 나무의 신 구망(句芒)으로, 서방 천제인 소호 금천씨의 아들 중 한 명인 중(重)이었다. 


그는 봄을 주관하는 신이며 과연 성격 또한 약동하는 봄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로는 강태공의 수명을 늘려주었다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 최초의 인간으로서 인류의 시조격이며, 삼황오제 중 한 명이다. 


여와와 함께 창세신이라고 하는 신화도 있다


전한 시대 지배층의 무덤인 마왕퇴의 명정(銘旌)에 그려진 그림에도 복희씨가 나오는데 하늘 맨 위 가운데에 자리잡고 좌우에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새라는 '란'(鸞)이 있으며 오른쪽에 해가 있지만 아홉 개 밖에 없고, 복희씨를 포함해야 열이 된다. 


이 그림의 화가는 복희씨를 해의 신이자 하느님으로 여긴 듯 하다.


복희씨와 관련된 창세 신화, 그가 봄을 주관하는 동방의 천제라는 것 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조합해보면 그는 생명의 시작을 뜻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고전 소설 《봉신연의》에선 신계를 다스리는 3명 중 하나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로 나오지만, 실제 등장은 거의 없다.


역대제왕묘에는 삼황오제 중 첫 번째로 모셔져 있다.


기원전 28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중국 고대 삼황(복희, 신농, 여와 혹은 천황, 지황, 인황) 중 첫번째로, 신화에 따르길, 중국인들에게 그물 낚시, 철제 무기 사용법, 요리, 동물 사육, 음악, 글쓰기, 양잠 및 직물로 실을 짜는 법을 가르쳐준 것으로 유명한 문화적 영웅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제방, 운하 및 관개 도랑을 파서 황하의 물을 길들인 것은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 또한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거기에, 철학의 기초를 형성하고 서예의 기원으로 알려진 8개의 삼자명을 만든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고대의 중국 모계 사회에서는 복희의 배우자이자 창조신인 여와를 숭배했다고 한다.


그의 출생지는 황하의 중하류로, 그의 외양은 전통적으로 복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복희는 뱀의 몸을 가졌고, 기원전 2962년경에서 최초의 용이 복희의 몸으로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길, 대홍수로 대지가 물로 덮일 당시, 복희와 여와만이 곤륜산으로 들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신성한 존재는 그들의 결합을 승인하고, 이들의 결합을 통해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기원전 2852년~기원전 2737년(총 115년) 혹은 기원전 2952년 ~ 기원전 2836년(총 116년) 동안 세상을 통치했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의 문인 이영에 의하면, 곤륜산에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복희와 여와였다고 한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가 되고 싶었으나, 이 욕망에 의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결국 이들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 결혼을 허락한다면 연기가 나고, 그렇지 않으면 연기를 흩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들 앞에 연기가 모이게 되자, 결국 복희와 여와는 신성한 존재들의 허락으로 부부가 될 수가 있었다. 


이 당시 여와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숨기기 위해 풀로 된 부채를 만들었다고 한다. 


복희와 여와는 종종 인간의 몸과 또아리를 튼 용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것에 존재하는 양(남성)과 음(여성)의 원리를 나타내는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197년 동안 살다가 현대의 혜난인 '첸'이라는 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1996년부터 복희의 무덤을 민속문화유산보호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중국 문명을 창시한 자는 총 3명이 있었는데, 복희는 그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그보다 먼저 존재했던 여와 시대는 원시 모계 사회로, 이 시대 출산에 대한 개념은 남성과 어린 아이가 배제된 기적으로, 번식 과정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고대 중국 사회는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옮겨져갔고, 그 중심에는 복희가 있었다고 한다.


태호 복희씨의 그림들에는 여와와 함께 뱀의 몸을 DNA 나선 모양으로 꼬고 금척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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