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송강 정철과 기녀 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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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이
강계 유배 시절,
어느 날,
송강이 홀로 쉬고 있을 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철은 “들어오너라”라고 말했다.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소리 없이 들어섰다.
진옥이었다.
화용월태의 모습 덕분에
방이 밝아지는 듯했다.
“죄송하옵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무례를
용서해 주옵소서."
“괜찮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
“예, 소첩은
기녀 진옥이라 하옵니다."
“이 밤중에 어쩐 일인고?"
“예, 대감의 명성을 들어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대감의 글을 흠모해 왔습니다.
그래서 뵙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내 글을 읽었다니,
무엇을 읽었는가?"
“제가 거문고를 타 올릴까요?"
“그래, 들어보자."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居世不知世)
하늘 밑에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戴天難見天)
내 마음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너뿐인데
(知心惟白髮)
나를 따라 또 한 해
세월을 넘는구나
(隨我又經年)
정철은 놀랐다.
세월과 삶의 무상함을 읊은
자신의 노래를 타고 있지 않은가.
진옥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또 자신의 시를 알고 있는
진옥에게 두 번 놀랐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그날부터
외롭고,
쓸쓸하고,
괴로웠던,
정철의 유배지 생활은 달라졌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진옥의 샘솟는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름을 잊게 되었고,
그녀의
거문고나
가야금의 선율을 들으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진옥은
시와 가무에 능함은 물론
지혜롭고,
슬기롭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런 진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날,
두 사람이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정철이
“진옥아,
내가 시 한 수 읊을 테니,
그 노래에 화답을 해야 한다”
진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철은 다시
“지체해서는 안 되고
내가 마친 후
바로 화답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시를 읊었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적실(的實)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정철의 노래가 끝나자
거문고에 손을 올린 채로
진옥은 지체 없이 답가를 불렀다.
'철(鐵)이 철이라커늘
섭철(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정철은 놀랐다.
진옥의 즉석 화답은
당대의 대문장가 정철을
탄복시키고도 남았다.
두 사람 모두
은유적 표현이 기발하다.
번옥(燔玉)은
돌가루로 구워 만든
가짜 옥이다.
진옥(眞玉)은
진짜 옥이다.
기녀 진옥을 일러
가짜 옥이 아니라
진짜 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살송곳’은
‘살(肉)송곳’으로
남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다.
그것으로
진옥을 뚫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진옥은
거기에 맞춰
바로 절묘하게 응대한 것이다.
‘번옥’에 대해서 ‘섭철(鐵)’
‘진옥(眞玉)’에 대해서 ‘정철(正鐵)’
‘살송곳’에 대해서
‘골풀무’로 답함으로써
기지와 해학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섭철(鐵)은 잡것이 섞인
순수하지 못한 쇠를 말하고,
정철(正鐵)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쇠를 뜻하면서
동시에 정철을 가리키고 있다.
골풀무는 불을 피우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의 하나인데,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정철은 유배 생활 중
부인 유씨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진옥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한편 부인도
서신 속에서 진옥에 대한 투기나
남편에 대한 불평보다는
남편의 유배지 생활을 위로해 주는
진옥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려운 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위로를 주고
남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여자라면
조금도 나무랄 것이 없다는
부인의 글을 받고
정철은 고마웠고,
그런 내용을
진옥에게도 얘기했다.
진옥 역시
정철의 부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는 물론
유씨 부인이
일개 기녀인 자신을 비하하는 대신
자신에게 투기하지 않고
오히려
정철을 잘 보살펴주기를 부탁하는
너그러움에 감복하여
더욱 알뜰히
정철을 보살피려 노력했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부인과 자신에 대한
진실하고 솔직한 정철의 처신에
진옥은
더욱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갖게 된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정철은 그해 5월
강계에서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나
다시 벼슬길로 나가게 되었다.
진옥은 기쁘면서도
이별해야 하는 아쉬운 정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정철 역시
유배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 속에서도
진옥의 일이 마음 아팠다.
부인 유씨는
한양으로 올라온 정철에게
진옥을 데려오도록 권했다.
정철 역시
진옥에게 그 뜻을 물었으나
진옥은 거절했고,
강계에서 혼자 살면서
짧은 동안의
정철과의 인연을 되새기며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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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두 복 받는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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